
췌장암 환자의 약 70%가 진단 당시 이미 진행성 또는 전이성 암 상태입니다. 저도 병동에서 일하면서 단순 장염이나 소화불량으로 생각하고 오셨다가 뒤늦게 췌장암 진단을 받으시는 분들을 여러 차례 봤는데, 그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췌장암은 '침묵의 암'이라 불릴 만큼 초기 증상이 일반적인 소화기 질환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췌장은 위 뒤쪽 복강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종양이 어느 정도 커지기 전까지는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췌장이란 소화 효소와 인슐린을 분비하는 장기로, 위 뒤편에 가로로 길게 위치한 약 15cm 길이의 기관입니다. 이렇게 깊은 위치 때문에 일반 건강검진으로는 발견이 어렵고, CT나 MRI 같은 정밀 검사가 필요합니다.
췌장암을 의심해야 하는 복통과 체중감소
췌장암의 가장 흔한 초기 증상은 명치 부근의 복통과 원인 모를 체중 감소입니다. 저희 병동에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그냥 소화가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스트레스 때문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췌장암으로 인한 복통은 일반적인 소화불량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통증이 명치에서 시작해 등 쪽으로 뻗치듯이 퍼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누웠을 때 통증이 심해지고 앞으로 구부린 자세에서 다소 완화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참고 자료의 사례처럼 30대 환자분도 등 통증이 너무 심해서 펜타닐 패치(Fentanyl patch)를 사용하셨다고 하는데, 여기서 펜타닐이란 모르핀보다 50~100배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 암성 통증 조절에 사용되는 강력한 약물입니다.
체중 감소도 중요한 신호입니다. 췌장은 소화 효소를 분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암이 생기면 지방과 단백질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급격히 빠집니다. 보통 2~3개월 사이에 10kg 이상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환자분 중에는 2개월 만에 15kg이 빠져서 주변에서 다이어트 비결을 물어봤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는데, 그때 이미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국립암센터 자료에 따르면 췌장암 환자의 약 80%가 진단 시점에 이미 체중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소화불량, 복통, 설사가 2주 이상 지속되면서 동시에 체중이 줄어든다면 반드시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황달과 소변색 변화로 나타나는 담도 폐쇄
췌장암의 또 다른 중요한 증상은 황달입니다. 특히 췌장 머리 부분(pancreatic head)에 암이 생기면 담관을 압박해 담즙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혈액으로 역류하면서 황달이 생깁니다. 여기서 담관이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흘러가는 통로로, 췌장 머리 부분을 관통하고 있어 췌장암이 생기면 쉽게 막힐 수 있습니다.
황달의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부와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함
- 소변 색깔이 진한 갈색이나 콜라색으로 변함
- 대변 색깔이 회백색으로 옅어짐
- 피부 가려움증이 동반됨
저는 병동에서 일하면서 황달로 내원하신 분들이 "온몸이 가려워서 잠을 못 잤다", "소변 색깔이 이상해서 병원에 왔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황달은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병원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문제는 황달이 나타날 때는 이미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대한췌담도학회 연구에 따르면 황달을 동반한 췌장암의 경우 약 60%가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암으로 진단되었습니다(출처: 대한췌담도학회). 그래서 황달이 생기기 전, 복통이나 소화불량 단계에서 의심하고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췌장암 진단은 주로 복부 CT나 MRI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CT(Computed Tomography)란 X선을 이용해 신체 단면을 촬영하는 검사로, 췌장 종양의 위치, 크기, 주변 장기 침범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혈액검사에서는 CA19-9라는 종양표지자를 확인하는데, 이 수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췌장암은 아니지만 췌장암 환자의 약 70~80%에서 상승합니다.
제 경험상 많은 분들이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데 그냥 약 먹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하시다가 시기를 놓치십니다. 특히 흡연 경력이 있거나 만성 췌장염, 당뇨병이 있는 분들은 췌장암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복통과 소화불량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체중이 이유 없이 빠지거나, 갑자기 당뇨가 생기거나 악화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소화기내과나 외과를 방문해 정밀 검사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지만, 증상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빠르게 대응한다면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저희 병동에서도 우연히 건강검진에서 발견해 조기에 수술하신 분들은 예후가 훨씬 좋았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의심되면 반드시 병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